
해 질 무렵 히말라야 기슭의 신둘리 마을 골목으로 우유통을 든 여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차곡차곡 모은 하루의 결과를 마을 집유장으로 옮기는 시간. 젖소 한 마리가 가져온 변화는 이 마을 여성들의 하루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한국에서 온 젖소가 있다. 지난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 국제개발 NGO 헤퍼코리아는 신둘리 지역에 108마리의 한국산 홀스타인 젖소를 도입했다. 단순한 가축 지원이 아니라 협동조합 조직, 사양관리 교육, 디지털 관리 기술까지 포함한 종합 낙농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다.
처음 젖소를 받은 51농가를 포함해 현재 꺼멀라마이 여성낙농협동조합에는 총 310가구가 가입했다. 이 가운데 169가구는 집유소에 원유를 납품하고 있으며 월평균 수익은 약 200달러에 이른다. 네팔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이 100달러에 미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이다.

한국산 젖소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토착종보다 체격이 크고 우유 생산량은 현저히 높다. 일부 젖소는 하루 30리터 가까운 우유를 짜낸다. 한 농가는 “예전엔 건초만 줬는데 지금은 배합사료에 수분조절, 기록관리까지 한다”며 “기존에는 집유량이 하루 5리터 안팎이었는데,지금은 25리터 넘게 짜낸다”고 전했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착유되기까지는 철저한 사양관리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헤퍼코리아는 집유소, 사료창고, 바이오가스 시설 등 낙농 인프라를 갖추고 디지털 앱으로 개체별 건강과 생산 데이터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사료 섭취량, 번식일정, 질병 이력 등을 기록하며 농가 교육도 병행했다.
현지 여성들의 삶도 달라졌다.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짙은 네팔에서 여성들은 가사와 육아만을 전담했다. 구나 쿠마리 협동조합 대표는 “예전에는 여성들이 집 밖에서 활동을 거의 못 했지만 지금은 협동조합 운영도 맡고 자녀 교육비도 스스로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남편들도 여성의 사회활동을 지지해주기 시작했다”며 달라진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단이 방문한 둘째 날, 다마르 마을 농업현장학교에서는 40여명의 여성들이 모여 완전배합사료(TMR) 제조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날 교육에선 스마트 네피어, 슈퍼 네피어, 사일리지 등 고단백 풀 모종이 배포됐고, 젖소를 먼저 키운 농가가 재배 노하우와 사료 활용법을 나눴다. 아직 젖소를 받지 못한 농가들은 메모장을 꺼내 들고 열심히 받아 적었다.
신둘리 마을에서는 첫 송아지에 '감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젠 일과를 마친 여성들이 우유통을 들고 집유소 앞에 모이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
카말라마이시(네팔)=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