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국회 문턱을 넘은 이행강제금 제도가 9월 15일부터 시행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세무 조사 과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세법상 장부 등 제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납세자에게 1일 평균 수입금액의 0.1~0.2%(평균 수입금액이 없거나 그 산정이 곤란한 경우 1일당 500만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모법은 큰 틀만 규정한 채 상당 부분을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었으나 올해 6월 2일 국세기본법 시행령도 정비되면서 내용이 많이 구체화됐다. 새 제도 시행을 앞두고 주요 내용을 짚어본다. 시행령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은 추후 국세청 훈령 등으로 정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태료와 달리 반복 부과 가능
이행강제금 제도 시행 전에도 세무 조사 과정에서 의무를 불이행하는 납세자에 대한 제재 방법은 있다. 과태료를 물리는 방식이다. 세무 공무원의 질문에 대해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공무원의 직무 집행을 거부 또는 회피한 경우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그간 과태료 부과 사례는 왕왕 있었다. 실무적으로도 예고 통지, 사전 통지 등을 거쳐 과태료를 부과하는 절차가 정착돼 있다.
국세청은 이 과태료 규정만으로는 세무 조사에 필요한 자료의 실질적 확보가 쉽지 않다고 보고 이행강제금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존 과태료와 새로 생기는 이행강제금 간 차이를 비교해보면 이행강제금 제도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반복 부과가 가능한지 여부다. 과태료는 반복 부과가 가능하다는 규정이 없었고, 법원도 하나의 세무 조사에서 과태료를 수차 부과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던 바 있다. 이를 감안해 이행강제금은 30일 단위로 반복 부과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편의상 1일 이행강제금을 500만원으로 가정하면 30일 기준 1억5000만원이고, 세무 조사 기간을 대략 4개월로 보면 약 6억원 정도가 된다. 종전의 5000만원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려면 최소 30일 이상의 이행 기간을 정하고, 그 기한까지 장부 등을 제출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뜻을 먼저 통지해야 한다. 이 이행 기간 통지는 큰 틀에서 행정절차법상 사전통지의 특별규정으로 이해되는데, 통상 10일 이상 기한을 두도록 한 일반행정처분의 사전통지보다 긴 기간을 인정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행 기간 내 납세자가 장부 등을 제출하지 않으면 30일 단위로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다. 30일 산정 시 세무 조사 중지 기간은 제외된다. 중지 기간 과세 관청이 국세의 과세표준과 세액을 결정 또는 경정하기 위한 질문을 하거나 장부 등의 검사, 조사 또는 그 제출을 요구할 수 없다는 국세기본법 81조의8 5항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납세자 권익 보호 위한 심의위 절차 보장
또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 위해선 이행강제금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과태료 제도에선 없던 절차다. 위원회는 위원장(지방국세청장)이 지정하는 위원 6인으로 구성하되, 4인 이상이 외부 위원이어야 한다. 회의는 6인 중 4인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회의는 원칙적으로 비공개이지만, 위원장의 판단으로 공개할 수도 있다. 과태료보다 강한 제재인 만큼 부과 전부터 납세자 권익 보호를 위해 조사팀과 별개 조직인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한 것으로 이해된다.
심의 과정에서 납세자가 의견을 표명할 기회가 보장되는지는 현재로서 불분명하다. 그간 세무 조사 과정에서 열린 여러 위원회에서 국세청은 훈령 등을 통해 납세자의 참여 또는 의견 표명을 보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납세자의 실질적 권익을 보호하고 방어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행강제금 심의 과정에서도 유사한 절차가 마련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행강제금 제도가 시행돼도 과태료 제도는 폐지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행강제금과 과태료를 모두 부과할 수는 없다(국세기본법 85조의7 1항). 다만 어떤 경우 과태료를, 어떤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할지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과태료든, 이행강제금이든 어디까지나 부과 여부는 과세 관청의 재량이므로, 국세청 훈령 등에서 구체화되거나 실무 단계에서의 부과 현황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납세자가 이미 부과된 이행강제금의 정당성을 다투고자 할 땐 불복 방법의 차이에도 유의해야 한다. 과태료는 납부하면 불복할 수 없고, 불복하면 납부할 필요가 없다. 과태료 처분에 불복하는 경우 일반 소송 절차가 아니라 비송사건 절차에 따라 처리된다. 반면 이행강제금은 납부하고도 불복할 수 있고, 불복하더라도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납부 의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불복 절차는 일반 과세 처분의 불복 절차와 같다. 납세자가 이행강제금 부과 처분에 대해 불복한다면 조세심판원, 법원 등에서 이를 심리·검토하게 된다. 세무 조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 요구와 제출 여부 등에 관해 법원이 직접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새로 도입되는 제도인 만큼 실제 집행이 어떻게 될 것인지, 국세청 훈령과 실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제출 의무와 관련해 조사팀과 납세자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는 경우 특히 문제가 된다. 이행강제금은 과세전적부심도 허용되지 않는 만큼 이행강제금심의위원회가 과세전적부심과 사실상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절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에서 납세자의 의견 진술권이 보장되는 쪽이 바람직해 보이는 이유다.
오광석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I 2015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후 김앤장법률사무소에 합류했다. 세무조사 및 조세쟁송(심판 및 소송), 일반 조세자문, 관세자문 등에서 다수의 국내외 기업을 대리하고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조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영역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을 자문하며 다수의 환급을 이끌어냈고, 조세형사 쟁점도 전문적으로 다뤄 왔다. 오 변호사는 세법학회, 지방세학회, 국제조세협회(IFA) 등 조세 관련 학회에서도 발표자 및 토론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IFA 산하 청년 조직인 YIN(Young IFA Network) 창립 멤버로, 올해 10월부터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