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온 커피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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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라운지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커피 라운지에 대한 지분은 상당 부분 키위에게 있다. 키위는 뉴질랜드 섬에만 서식하는 날지 못하는 새다. 그 섬에 정착한 마오리족부터 유럽의 이민자들은 이 새를 자신들과 동일시해 왔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함과 외딴섬에서 살아남은 적응력을 가진 키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르러 뉴질랜드인을 지칭하는 단어가 됐다.

유럽 대륙에 혼돈이 찾아오자, 키위의 섬은 곧 커피의 섬이 됐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들이 뉴질랜드를 전초기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두 국가는 서로 떨어진 거리만큼 문화적인 차이도 컸다. 이전까지 텐트나 캐러밴, 푸드트럭 등 ‘스트리트 커피’를 즐겼던 뉴질랜드 사람들은 미군들을 환대하기 위해 기존의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취향의 공간을 탄생시켰다. 웰링턴의 ‘프렌치 메이드 커피하우스’(현재 폐업)가 대표적으로, 미국인의 취향을 반영해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커피 공간이 웰링턴과 오클랜드 거리 곳곳에 문을 열었다.

사진출처. pxhere

사진출처. pxhere

전쟁이 끝나고 미군들이 떠난 후에도 커피를 기반으로 뉴질랜드의 호스피탈리티 산업은 부흥했다. 전후의 혼란을 피해 유럽을 떠난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돼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이식해 도시 곳곳에 밀크바, 커피하우스, 카페테리아, 커피 바, 커피 갤러리 등의 공간을 만들었다. 이민자들의 삶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들은 뉴질랜드 호스피탈리티 산업의 독자적인 발전을 이끌었고, ‘커피 라운지’라는 이름을 딴 공간도 이 흐름을 타고 문을 열기 시작했다. ‘빈둥거리다’ 혹은 ‘게으르게 기대다’는 어원을 따라 커피 라운지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사회적 교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하루 동안 날씨는 심하게 바람이 불며 추워지다가도 맑아지고, 해가 들어 따뜻해지기도 했다. 모든 계절이 담긴 하루에 사는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커피는 필수요소였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피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머물 수 있는 사교의 공간으로서 커피 라운지는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점심시간 전에 문을 열어 새벽까지 영업하는 이곳에는 예술가, 음악가, 시인, 작가, 학자들이 드나들었고 커피 한 잔을 두고 토론을 펼치거나 그저 사람을 구경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 수지 반 데어 크바스트(Suzy Van der Kwast)가 1964년 웰링턴의 윌리스 스트리트에 문을 연 ‘수지의 커피 라운지(Suzy’s Coffee Lounge)’는 당대의 호스피탈리티 산업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프리츠 아이젠 호퍼(Fritz Eisenhofer)가 설계를 맡은 이곳은 세로로 길쭉한 구조에 메자닌(복층의 라운지 공간)을 두었다.

수지 커피 라운지 내부 / 사진. © Alexander Turnbull Library/Crown

수지 커피 라운지 내부 / 사진. © Alexander Turnbull Library/Crown

공간은 모더니즘 건축가의 손길에 따라 장식적 요소를 내세우기보다 직선을 강조한 심플한 요소들로 꾸며졌다. 가죽을 덧댄 의자와 목재로 꾸민 벽과 천장, 세로로 긴 공간을 따라 길게 뻗은 줄무늬 패턴의 바닥은 마치 호텔의 공항이나 라운지를 연상케 했다. 파랑과 초록, 갈색 계열의 색상을 테마로 어두운 조명이 깔린 이곳에는 줄곧 손님들이 내뿜은 담배 연기가 가득 찼다. 수지는 하루 평균 700~800잔의 커피를 내렸고, 그녀의 스몰 토크를 벗 삼아 커피를 들이켜려는 손님들로 매장의 안과 밖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현대적인 주거 공간과 새로운 생활 양식이 자리 잡아 사라지기 전까지, 이민자들이 북적이던 거리를 따라 만들어진 이 커피 공간들은 뉴질랜드 예술과 산업 융성의 밑거름이 됐다.

수지 커피 라운지 내부 / 사진. © John Daley

수지 커피 라운지 내부 / 사진. © John Daley

서울 합정동에 자리 잡은 클라리멘토 커피 라운지는 흡사 수지의 커피라운지처럼 모던한 인테리어를 뽐낸다. 목재로 마감된 벽, 회색 줄무늬 카펫, 격자무늬를 낸 천장, 가죽 의자는 흡사 수지의 커피 라운지를 연상케 한다. 채도가 낮은 회색과 갈색, 보라색을 활용해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차분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는 공간을 찾은 이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이곳의 바리스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커피의 아름다움을 누구나 격의 없이 편안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대화를 끌어낸다.

클라리멘토는 스페인어로 밝고 선명한 색깔이라는 뜻을 가졌다. 2022년 겨울 고양시 덕양구에 클라리멘토 로스터리를 꾸린 장형순은 그 이름처럼 밝고 선명한 색깔의 커피를 더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본래 술을 좋아해 바에서 일했던 그는 우연히 커피의 산미가 가진 우아함에 홀려 무작정 과테말라 커피 농장으로 떠났다. 1년간 커피가 나고 자라는 곳에서 그 떼루아를 온몸으로 배운 뒤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커피 산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와 로스팅 공장, 스페셜티커피 업체 등 커피산업의 다양한 현장에서 10년간 경험을 쌓았다.

라운지 클라리멘토 외관 및 내부 인테리어 / 사진. ©조원진

라운지 클라리멘토 외관 및 내부 인테리어 / 사진. ©조원진

커피의 색깔과 향기는 무궁무진했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고자 장형순은 늘 월급의 절반을 털어 귀한 커피 생두를 사 모았다. 온갖 꽃과 과일을 한 바구니에 넣은 것처럼 다채로운 향미를 뽐내는 그 커피들은 스페셜티커피 등급의 커피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대체로 맛을 봤을 때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향미 노트가 많을수록 커피의 가격은 배로 뛰었다. 커피가 곧 삶이라고 할 정도로 그 향미에 빠져있던 순간, 오로지 커피만 볶고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로스터리를 차렸다.

라운지 클라리멘토 / 사진. ©조원진

라운지 클라리멘토 / 사진. ©조원진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결과는 좋기만 할 수 없었다. 하루 매출이 2만 원을 겨우 채웠던 적도 있었고, 작심하고 볶은 비싼 커피들이 남아 가족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그 순간 장형순은 더 좋아하는 것에 몰두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가장 좋아하는 커피의 맛과 향을 탐닉했다. 좋은 커피를 더 비싼 가격에 팔기보다 최소한의 마진을 두고 진열장에 올렸다. 거래처 사장님이든, 손님이든 한 번 연결이 되면 좋은 커피를 맛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품질에 중점을 두고 욕심을 비우니 매출이 조금씩 오르게 됐고, 양질의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찾는 고객들이 끊임없이 발길을 이었다.

한 번이라도 맛있는 커피의 맛을 경험해 봤다면, 그 맛을 잊기는 절대 쉽지 않다. 다만 그 경험에 닿기까지의 과정이 각자의 주어진 환경에 따라 조금은 어려울 수 있을 뿐이다. 장형순은 이 과정에서 공급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까지 문턱을 낮추고 싶었다. 가능한 최대로 문턱을 낮춘 라운지 클라리멘토가 합정동에 문을 연 이유다. 이곳에서는 빠르게 카페인을 채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탭커피를 전면에 내세웠다. 탭커피는 대량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배치 브루(Batch Brew) 방식으로, 빠른 커피에 익숙한 대중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브루잉 커피를 선보일 수 있다. 한 번 그 맛을 보고 문턱을 넘은 소비자들은 곧잘 다음 단계로 고개를 내민다. 그때마다 바리스타들은 순간에 맞볼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추천해 내려준다.

라운지 클라리멘토 / 사진. ©조원진

라운지 클라리멘토 / 사진. ©조원진

스페셜티커피는 키위와 같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향미를 가졌고, 그 향미에 빠진 사람들의 취향에 빠르게 정착한다. 커피가 있는 곳에는 언제든 예술과 상업이 융성한다. 스페셜티커피는 보다 세심하게 취향을 다루니, 사람들은 더 깊은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다. 뉴질랜드의 호스피탈리티 산업이 융성했던 전후의 그 시기처럼, 스페셜티커피는 커피 산업의 성장을 딛고 사람들의 취향을 파고든다. 그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기도록 지구 반대편에도 커피 라운지가 둥지를 틀었다.

라운지 클라리멘토 / 사진. ©조원진

라운지 클라리멘토 / 사진. ©조원진

조원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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